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자료실

자료실

자료실입니다.

게시판 상세
제목 21세기 유아교육의 방향 : 생태중심 유아교육 -임재택교수
작성자 임종훈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07-03-27 10:04:51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1114
  1. 아이 키우는 일 : 어제와 오늘

   우리는 불과 30여년의 짧은 기간내에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무려 150여년에 걸쳐 이룩한 것이다. 우리는 고도성장을 조기에 이룩했다고 자랑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내부
를 들여다보면 사회적 변천과정에서 산업사회의 온갖 모순과 폐해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인간성이 상실되고, 공동체의식이 퇴락하고,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는 원래 한민족, 백의민족으로서 산 좋고 물 맑은 금수강산에서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고, 개인과 마을(사회)이 하나되고, 정신과 물질이 하나되고, 이성과 감성이 하나되어 살아왔다. 또한 우리의 아이들은 산업화 이전에는 좋은 가정, 사회 및 자연환경에서 올바르게 자라왔다. 즉,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적어도 양성 3세대(兩性 三世代)가 한 가정을 이루고 함께 모여 살면서 생산과 재생산을 비롯한 전체적인 삶을 꾸려 갔으며, 이웃집과 친척집들로 엮어진 사회적 관계망을 이루고 있었다. 자녀의 양육 책임은 주로 어머니에게 있었지만 조부모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이들의 교육과 사회화에 직접.간접으로 관여했다. 또한 아이들은 형제자매나 이웃 아이들과 어울려 자기집과 이웃집, 들과 산, 개울과 논.밭 등 자연환경을 마음껏 누비고 다니면서 또래관계를 배우고 자연의 변화를 터득했다. 그리고 이들은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동안 할머니, 어머니, 숙모, 누나들로부터 따뜻한 사랑과 마음의 위로를 경험하고,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이웃 어른들로부터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선하고 악함 등을 구별하는 판단력과 인간의 도리를 배웠다.
   그렇다면 오늘의 핵가족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가족구성원이라고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하나 아니면 두 명의 자녀이다. 아버지는 집에 있는 시간이 극히 짧고, 그 동안이나마 아이들과 놀아주거
나 얘기하는 일이 드물다. 장시간 노동과 저녁때의 한잔으로 늦게 집에 들어 오면 아이와 놀아 줄 여력도 없고 의무감도 안 느낄 뿐더러 아이는 잠들어 있기 일쑤다. 또한 아이는 같이 놀 형제나 사촌들은 물론 이웃 아이들도 거의 없으며, 설령 같이 놀 또래가 있다 하더라도 놀만한 곳이 없다. 집 앞 길거리는 자동차가 위험하고, 놀이터는 큰애들이 차지하고,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되어 있어 흙, 모래, 물놀이를 할 곳이 없다. 더우기 엄모자부(嚴母慈父)로 바뀌어진 가정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온종일 어머니와 일대 일의 관계하에서 보내게 된다.
   예로부터 집안이 잘 되려면 자식을 잘 키워야 하고, 마을이 잘 되려면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는 소리가 왁자지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농촌이나 도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농촌에는 아예 아이들이 없고, 도시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4각 시멘트 공간에 들어앉아 글자 배운다고 머리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를 잃어버리고, 자연을 잃어버리고, 아이다움을 잃어버리고 학부모들의 빗나간 교육요구에 휘둘리며 자라고 있다. 이들은 지금 '심신(心身)이 나약한 아이', '이기적인 아이', '버릇없는 아이', '머리만 큰 아이','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더우기 부모의 지나친 가족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적 의식은 유아교육을 조기교육 내지 재능교육으로 잘못 인식하여 아이가 서너살만 되면 각종 사설학원에 보내거나 유아용 학습지로 공부를 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결국, 오늘의 유아교육은 우리의 사회현실과 미래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올바른 교육이념, 방향, 목적 및 내용을 정립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요즘 아이들이 어쩐지 '우리 아이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먹는 것도, 겉 모습도,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 국가, 사회, 학교 및 가정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2. 아이 키우는 일 : 내일의 방향

   미래의 유아교육 방향은 지금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 '자연을 잃어버린 아이들', '아이다움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놀이'와 '아이다움'을 되찾아주는 데서 모색되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유아교육의 방향은 아동중심 교육에서 생명중심 교육으로, 개인중심 교육에서 공동체중심 교육으로, 이성중심 교육에서 전인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임재택, 1998).
   첫째, 아동중심 교육에서 생명중심 교육으로  서양의 기독교 사상과 과학기술론적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임을 자처하고 자연지배의 도구로 기계와 기술을 개발, 이용함으로써 마침내 인간 자신을 주체적인 삶을 잃고 기계의 조종을 받는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데카르트의 합리론, 뉴턴의 물리학, 로크의 사회사상에서 비롯된 서구의 합리주의, 실증주의, 산업주의는 인간과 물질을 고립되고 단절된 원자적 존재로 파악하고, 사회, 자연, 우주를 기계론적 모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동양적 세계관은 힌두교, 주역, 불교, 도가, 동학, 원불교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정신과 물질, 이성과 감성,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 현상과 실체 등을 이원론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天地人이 하나이고, 인간과 동물, 생물과 물질, 물질과 정신은 존재학적으로 근원적인 차이가 없이 하나로 연결된다. 상생(相生)의 지혜는 인간의 삶이 주변의 생물과 무생물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또한 모든 우주만물은 있고(有) 없음(無), 삶(生)과 죽음(死)의 구분이 없으며, 순리(順理), 도(道), 기(氣)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커다란 순환체계이며, 공존공생하는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둘째, 개인중심 교육에서 공동체중심 교육으로 산업사회에서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가족,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이 별개로 분리됨으로써 사람들은 기능론적 이기주의에 빠져들면서 공동체의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유아교육에서도 유아 개개인의 성장과 발달에 중심을 둠으로써 개인이기주의 내지 가족이기주의에 매몰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유아교육에서는 유아의 개성 존중과 능력 신장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식의 함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레지오에밀리아 프로그램은 유아교육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각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동의 개성과 공동체성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유아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공동체, 개인과 가족이 함께 어우러지는 가족공동체, 사람과 사회가 함께 하는 사회공동체,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생명공동체를 재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유아교육의 모습은 우리 전통사회 사람들의 삶과 육아방식에 엿볼 수 있다.
   셋째, 이성중심 교육에서 전인(머리.가슴.노작)교육으로 산업사회에서는 이성과 감성, 정신(마음)과 육체(몸), 지능과 감각을 분리하여 이성, 정신, 지능을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교육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필요한 인간능력인 이성, 정신, 지능의 개발에 주력함으로써 지식주입식 교육, 점수따기식 교육, 획일주의적 경쟁교육의 병폐를 낳고 있다. 산업사회에서의 교육은 과학기술 향상을 통해 경제발전에 유용한 인력(人力)양성에 주력하게 된다. 즉, 산업사회에서의 교육은 인간의 삶을 가꾸는 교육이나 사람을 키우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미래사회의 교육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지능과 감각을 동시에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지(知), 덕(德), 체(體)를 고루 갖춘 전인적 인간, 머리(hand), 가슴(heart), 손(hand)이 조화된 인간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이다. 최근 유아교육에서 감성교육이나 감성지수(EQ)가 강조되는 것은 이성이나 지식 중심 교육에 대한 반성의 징후이다. 유아들은 어려서부터 촉각, 미각, 후각, 청각, 시각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감각교육과 일과 놀이를 통해 손발과 온몸을 움직이는 노작.체육교육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로 키우기를 요구하는가? 그 대답은 한마다로 '신명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다. '신명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명나는 어린이'는 개성과 창의력을 지니면서 흥겨움과 우리 멋이 흘러 넘치는 가운데 남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리는 어린이다운 어린이를 말한다. 참고로 '신명나다'의 사전적 의미는 '흥겨운 신과 멋이 나다'이며, '신'이란 '어떤 일에 정신이 쏠리거나 흥이 나게 되거나 하여 일어나는 흥겨운 기분'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가 키우고자 하는 21세기 어린이상은 '신명나는 어린이'이다. 이러한 어린이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튼튼한 어린이, 즐거운 어린이, 스스로 하는 어린이,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어린이, 예의바른 어린이, 생명을 존중하는 어린이, 일을 귀하게 여기는 어린이, 우리것을 아는 어린이, 지구를 지키는 어린이, 더불어 사는 어린이와 같다.  

  3. 새로운 유아교육 프로그램의 모색

.  '신명나는 어린이'로 키우려면 아이를 키우는 주변환경이 '신명나는 환경'이어야 한다. 모든 생물이 자라는데는 생기(生氣)가 왕성해야 하듯이 아이가 잘 크려면 생기(生氣)나 원기(元氣)가 왕성해야 한다. 생기(生氣) 발랄한 아이가 신명나는 아이다. 기(氣)는 만물의 생성과정의 원동력이다. 기(氣)는 천지만물의 발생(發生), 소장(消長), 변화(變化)의 도(道)이고 순리(順理)이다.
   천지인(天地人)의 일체합일은 기(氣)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사람의 성장과 변화는 천지만물의 기운과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아이가 잘 크려면 하늘의 기(天氣)와 땅의 기(地氣)와 교섭해야 한다. 아이는 천지인의 조화와 교섭하면서 자라야 신명나는 아이가 된다. 신명나는 아이는 땅을 밟고 하늘을 이고 놀면서 자라는 아이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생기의 징표이다. 천지만물의 '자연을 잃어버린 아이'와 아이들의 생기인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는 신명나는 아이가 될 수 없다.
   요즘 일부 좋은 유아교육기관들은 부모들의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라는 요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놀이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놀이는 세심하게 통제되고 조직되어 있으며, 오직 제한된 범위 안에서 또는 앉은 채 하는 놀이들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뛰어놀 때 하는 활기차고 창의적인 놀이와는 꽤 거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사들의 지도와 감독 하에 주어진 교구를 가지고 노는 놀이는 아이들을 신명나게 하지 못한다. 놀이 공간이 제한적이고 인공적이고, 놀이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아이들의 안전과 위생 문제를 우려한 교사의 통제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이들의 놀이는 결코 신명나는 놀이가 될 수 없다.  
   아이들에게는 일과 놀이와 공부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사람이란 본디 손발을 움직이며 일(놀이)를 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일을 해야 착해진다. 일을 안하거나 못하게 될 때 사람의 몸은 병들고 마음은 악해지는 것이다. 농부는 농사가 일이고 재미(놀이)다. 농부는 자연의 순리대로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정성을 쏟아 때가 되면 수확을 한다. 농사의 과정은 일(노동)이지만 재미나는 일이며, 노력과 정성을 다한 만큼 수확을 올리므로 그 과정 전체가 공부하는 일이다. 농심(農心)이 천심(天心)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치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공부시간과 노는 시간과 청소시간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공부는 공부대로, 놀이는 놀이대로, 일은 일대로 억지로 나누어 놓은 상황에서 아이들은 공부도, 놀이도, 일도 제대로 못하게 되므로 짜증스럽고 괴로울 수 밖에 없다. 장난치고 노는 것이 청소가 되거나 산수를 놀이처럼 배운다면 아이들은 결코 괴롭지 않을 것이다. 새끼 고양이가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은 쥐 잡는 방법을 익히는 것에서 배워야 한다. 너댓 살짜리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과자를 주고 방안에서 혼자 놀라고 하는 것보다 빨래하는 곳에 데려가면 얼마나 열심히 빨랫감을 주므르고, 물깃는 놀이에 열중하겠는가? 이것이 아이들의 놀이고 일이고 공부다.
   불과 20-30년 전만하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은 또래들과 함께 자연 속에 뛰놀면서 자랐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산에서, 들판에서, 개울에서, 바닷가에서 햇빛과 바람과 물과 흙과 밤하늘의 별과 함께 어우러져 자랐다. 메뚜기, 개미, 참새, 게, 가재, 송사리, 올챙이가 친구였고, 나무, 돌, 풀잎사귀, 들꽃도 친구였다. 동네의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모두 친구였다. 자연과 또래들이 모두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다. 자연은 우주만물의 섭리를 깨우쳐 주는 큰 선생님이었고, 또래 친구들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주는 작은 선생님이었다.
   이같은 아이들의 놀이는 삶이고 생활이고 일이고 공부였다. 당시 아이들의 교육은 한마디로 '공터놀이 교육'이었다. 공터놀이 교육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너와 내가 하나되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는 교육이다. 여기서 공터는 산, 들판, 개울, 바닷가, 동네 어귀의 정자나무밑, 누구네 집 마당이었으며, 춥거나 비오는 날이면 사랑방, 부엌 아궁이, 처마밑이 공터였다. 자연과 또래들이 선생님인데,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쳐주는 그런 선생님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물어서 배우거나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해야 한다. 공터놀이 교육에서 아이들은 정보나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몸에 익힌다. 그래야만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공터놀이에서 소외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경우, 주변의 노인이나 다른 어른들이 있었다면 약간 도와줄 때도 있지만 모든 당면 문제를 스스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부모와 가족들은 모두 일터에 나가고 없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늘날 유아교육의 이념과 내용과 방법은 옛적의 '공터놀이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공터놀이 교육의 원형에서 오늘의 아이 잘 키우는 프로그램을 원용한다면 ① 산책 프로그램, ② 텃밭가꾸기 프로그램, ③ 노인.아동 상호작용 프로그램, ④ 동물사육 프로그램, ⑤ 전통민속.놀이.음율 미술 창작 프로그램, ⑥ 도시.농촌교류 프로그램, ⑦ 요리활동 프로그램, ⑧ 환경교육 프로그램, ⑨ 체육활동 프로그램, ⑩ 절제 절약 프로그램, ⑪ 명상 프로그램, ⑫ 공동체활동 프로그램 등을 다양하게 개발.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석사학위논문>
권미량 (1997). 유아과학교육의 생태학적 접근. 부산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김미정 (1998). 생태학적 유아환경교육 방안 모색. 부산대 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김점옥 (1998). 불교와 동학에서 나타난 생명사상의 유아교육적 함의. 부산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마경희 (1999). 자연친화적 유아교육에 대한 부모의 인식에 관한 연구. 부산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서영희 (1999). 생태중심 유아교육 프로그램 운영 사례연구. 부산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신지영 (1999). 불교의 생명사상에 나타난 유아교육원리. 부산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안서영 (1999). 기독교의 생명사상이 유아교육에 주는 시사점. 부산대 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조채영 (1996). 소파 방정환의 유아교육 사상과 실천연구. 부산대 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단행본: 저서>
공동육아연구회 편(1994). 함께 크는 아이. 서울:도서출판 또하나의 문화  
대안교육을 생각하는 모임(1995). 새로운 학교 큰 교육이야기. 서울:내일을여는책.  
박이문 (1997). 문명의 미래와 생태학적 세계관. 서울:당대.
보리 편집부 엮음(1997).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서울:보리출판사.
윤구병 (1995). 실험학교 이야기. 서울:보리출판사.
윤구병 (1995). 조그만 내 꿈 하나. 서울:보리출판사.    
채규철 (1997). ET할아버지와 두밀리 자연학교. 서울:내일을 여는 책.

<단행본: 번역서>
샌드라스카 저,현은자 역(1992).어머니의 양육과 타인의 양육. 서울:양서원.
하이타니 겐지로 저, 햇살과 나무꾼 역 (1996). 아이들에게 배운다:철학이 있는 유치원 일기. 서울: 도서출판 개마고원.    

<생태사상 운동 관련 잡지>
 [녹색평론] : 구입처 (053) 742-0663, 0666 녹색평론사
 [처음처럼] : 구입처 (02) 707-3833-4 내일을 여는책
 [환경과 생명] :구입처 (02) 785-5800-1 환경과 생명사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장바구니 0

맨위로